이번에 법정스님의 "적게 적게"라는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 맞는 말씀이긴 한데... 이건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의 이야기 아닌가? 하는 묘한 불편함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 불편함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내가 너무 속물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라며 자책하기도 했고요.
오늘은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보려고 합니다. 왜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이 가장 잔혹한 현실 앞에서 공허하게 들리는지, 그리고 그 간극 속에서 우리가 진짜 붙들 수 있는 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적게 가져라"는 말,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요?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말고, 먹지 않아도 될 음식은 먹지 말고..."
법정스님의 이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해보겠어요. 이 조언의 전제에는 "이미 충분히 볼 것이 있고, 충분히 먹을 것이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거든요.
절제는 충분히 가진 사람에게는 지혜가 되지만, 아직 충분히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체념이나 모욕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 봐야 할 것들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못 보는 사람들
- 먹고 싶은 게 있는데, 형편이 안 돼서 못 먹는 사람들
- 배우고 싶은데,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아이들
- 국내에서도 배를 곯고, 학대받으며, 기본적인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이런 현실 앞에서 "적게 갖고, 적게 먹고, 적게 보라"는 말은 — 이미 넘치도록 가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과, 아직 부족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이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어요.
이 시대의 가장 뼈아픈 진실은, '선택적 절제'를 할 수 있는 사람과 '강요된 결핍'을 견뎌야 하는 사람이 같은 세상에 공존하고 있다는 거예요.
현대 사회에는 묘한 '넘침의 계급'이 생겼어요:
- 한쪽에는 정보 과잉, 선택 과잉, 관계 과잉으로 지친 사람들이 있고
- 다른 한쪽에는 애초에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적게 보라, 적게 먹으라"는 말을 들을 때, 이미 부족한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느낄 수밖에 없어요.
"나는 원래부터 적게밖에 못 보는데요. 나는 적게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못 먹어서 그러는데요."
법정스님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법정스님의 "적게 적게"는 정말 결핍을 강요하는 말이었을까요?
다시 읽어보면, 스님의 말씀에는 중요한 맥락이 숨어있어요.
"이 폭력과 인간 부재의 시대에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불필요한 사물에 대해서 자제와 억제의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불필요한 사물"이라는 표현이에요. 스님이 말씀하신 건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었어요.
진짜 줄여야 하는 '과잉'의 정체
| 스님이 말씀하신 '넘치는 것들' | 현대 사회의 실제 모습 |
| 보지 않아도 될 것 | 자극적인 뉴스, SNS 비교 콘텐츠, 혐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영상들 |
| 듣지 않아도 될 소리 | 끝없는 알림음, 가십, 남을 깎아내리는 험담들 |
| 먹지 않아도 될 음식 | 스트레스성 폭식, 감정적 과식, 중독성 있는 자극적 음식 |
| 읽지 않아도 될 글 | 분노를 자극하는 댓글, 가짜 뉴스, 비교 의식을 부추기는 콘텐츠 |
이런 과잉들은 돈이 많든 적든, 계층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를 소진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독성 있는 자극들이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사람들은 오히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아요. 지쳐있을수록 자극적인 것에 더 쉽게 끌리게 되거든요.
절제의 진짜 목적: 외면이 아니라 더 깊은 연결
법정스님의 "적게 적게"는 세상을 등지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의 진짜 아픔을 볼 수 있는 맑은 시선을 갖기 위해 불필요한 노이즈를 걸러내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우리가 불필요한 자극과 소비에 에너지를 쏟지 않을 때, 비로소 진짜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 내 주변에서 조용히 고생하고 있는 이웃들
- 도움이 필요하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
-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나눔과 연대의 가능성들
절제는 마음의 공간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채우기 위한 준비 과정이에요.
"그럼 결핍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이 질문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에요.
개인의 절제만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절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절제함으로써 생긴 여백과 여유를, 절제조차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 그게 진짜 "적게 적게"의 완성된 의미가 아닐까요?
나의 '적게'가 누군가의 '충분히'가 되는 법
이제 중요한 건 감동으로 끝내지 않는 거예요. 개인적 절제와 사회적 책임을 연결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해드릴게요.
1단계: 내 안의 '진짜 과잉'과 '가짜 결핍' 구분하기
하루 동안 내가 소비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점검해보세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의 소비까지요.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 스마트폰을 몇 시간 들여다봤나요? 그 중 진짜 필요했던 시간은?
- SNS에서 남들과 비교하며 기분이 나빠진 시간은 얼마나?
- 스트레스 때문에 습관적으로 먹거나 마신 것들은?
- 분노나 불안을 자극하는 뉴스나 댓글을 본 시간은?
이 점검의 목적은 자책이 아니라 인식이에요. "아, 내가 이런 것들에 에너지를 쓰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됩니다.
2단계: '적게'에서 생긴 여백을 의미 있게 채우기
스마트폰을 30분 덜 보면 30분이 생겨요. 불필요한 술자리를 하나 줄이면 저녁 한 끼 분의 시간과 돈이 남아요. 충동구매를 한 번 참으면 예상치 못한 여유가 생기죠.
그 여백을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요:
- 시간 여백: 지역 자원봉사에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보기
- 금전 여백: 국내 아동 결식 지원이나 학대 피해 아동 단체에 작은 정기 후원 시작하기
- 관심 여백: 주변의 혼자 사는 어르신이나 힘든 이웃에게 먼저 안부 물어보기
- 소비 방향: 사회적 기업 제품을 의식적으로 선택해보기
"내가 덜 쓴 것이 누군가에게는 충분함이 된다"는 감각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면, 절제가 의무가 아닌 의미로 바뀌기 시작해요.
3단계: 술 한 잔을 줄이는 것부터 — 가장 현실적인 절제의 시작
거창한 결심 말고, 이렇게 시작해보세요:
- 오늘 세 잔 마실 것 같으면, 두 잔에서 멈춰보기
- 술자리 전에 물 한 잔 먼저 마시기
- 줄인 술값만큼을 따로 모아서 의미 있는 곳에 보내보기
- 술 대신 선택한 시간에 가족이나 친구와 진짜 대화해보기
자제는 완벽한 금지가 아니에요.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덜"이라는 방향성이 쌓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작은 쌓임이 어느 순간 나를 조금 더 가볍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Q&A 현실적인 질문
Q1. "이런 개인적 실천으로 사회 불평등이 해결될까요? 너무 미미하지 않나요?"
솔직히 말해서, 개인의 작은 실천만으로 거대한 사회 구조를 바꿀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답은 아니죠.
중요한 건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부담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겠다"는 태도예요.
사회 변화는 정책과 제도로 이루어지지만, 그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개인들의 작은 실천들이 모인 사회적 분위기거든요. 내가 먼저 변하지 않으면, 세상에 변화를 요구할 자격도 없어지는 거죠.
Q2. "법정스님의 말씀이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 느낌을 억지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스님은 '속세에서 한 발 물러난 자리'에서 말씀하시는 분이고, 우리는 속세 한가운데서 월세 내고, 카드값 갚고, 가족 부양하며 버티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수긍하기 힘들었던 거구요.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100% 그대로 적용하려 하지 않아요. 대신 이렇게 가져와요:
"내가 이미 과하게 누리고 있는 영역에만 '적게 적게'를 살짝 적용해보기"
- 술, 쇼핑, SNS, 정보 과잉 같은 데만 절제를 연습하고
- 정말 "보고 싶지만 못 보고, 먹고 싶지만 못 먹는" 영역까지는 그 기준을 들이대지 않기
그건 수행자의 몫이지, 겨우 버티며 사는 우리에게까지 강요해야 할 기준은 아니니까요.
불편함을 느끼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시작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하신 것 자체가, 이미 세상에 대해 무감각해지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저는 느꼈어요.
법정스님의 말씀이 전부는 아니에요. 그 말씀이 닿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있고, 그 빈자리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건 "내가 사람답게 느끼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어요.
나 자신에게는 불필요한 것들을 조금 "적게 적게"
이 세상에는 못 보고, 못 먹고, 못 배우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아주 작은 것이라도 "조금만 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고, 무력감에 주저앉지도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람답게 버티는 것.
절제는 세상을 등지는 게 아니라, 세상과 더 건강하게 연결되기 위한 마음의 다이어트예요. 그리고 그 다이어트를 통해 생긴 여유로운 공간에, 진짜 소중한 것들을 채워넣는 거죠.
예들 들어 오늘 저녁, 술 한 잔을 조금 줄이신다면 그 작은 자제 하나가 나를 위한 선물이 되기도 하고, 그 아낀 마음이 언젠가 누군가의 따뜻함이 되기도 할 거예요.
현실은 여전히 차갑고 불평등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사람다운 선택을 하려는 여러분의 마음만큼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적게 적게"보다는, 당신이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주세요. 그리고 오늘 하루, 나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조금만 더 부드러운 선택 하나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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