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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 사이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법 - 받는 만큼만 일하는 것이 왜 당연한 권리인가

by JapaniLog 2016.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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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분들 혹시 회사에서 "이건 내 업무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일을 하지는 않으셨나요?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상사의 사적인 심부름을 거절하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억지로 웃으며 그 일을 떠안았던 경험 같은 것 말이에요. 저도 사회초년생 시절, 그런 순간마다 속으로는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나 하나 참으면 조용히 넘어가겠지"라고 자위하며 살았던 기억이 있어요.

오늘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갑과 을의 굴레,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왜 우리는 정당한 대가 이상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을까요?

먼저 이 불편한 현실부터 정직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직장에서 느끼는 진짜 피로감은 단순히 업무량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그것은 '내 삶의 통제권을 타인에게 빼앗겼다'는 정서적 주권의 상실, 즉 존재론적 무력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있어요. 굴레를 거는 사람과 굴레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 사이의 위계 말이죠. 소위 '가진 자들'은 자연스럽게 편해지려 하고, '없는 자들'은 생존을 위해 순종을 강요받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한 번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것이 호의가 아니라 '선례'가 되어버린다는 거예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 부당한 요구를 "이번만"이라며 받아들이고
  •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굳어지며
  • 거절하면 "예민한 사람",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구조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닌 정당한 권리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요"받는 만큼만 일하는 것"이 왜 이렇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킬까요?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헌신과 희생을 미덕으로 가르쳐왔어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계약의 본질을 왜곡하는 거예요.

미화된 표현 실제 현실
"열정적인 직원" 초과 노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직원
"조직에 헌신적" 사적인 요구까지 거절 못하는 사람
"팀플레이어" 내 몫 이상을 묵묵히 떠안는 사람
"프로페셔널한 태도" 부당한 요구에도 웃으며 응하는 사람

계약서에 명시된 업무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을이 갑에게 제공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착취예요. 그리고 그 착취에 응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존중이에요.

돈을 받으면 돈 받는 만큼만 확실하게 일해주면 되는 거죠. 사사로운 심부름, 사적인 일까지 자기 시간을 버려가며 할 필요가 없어요그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진정한 직업의식은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니라, 내가 받아야 할 정당한 대가와 내가 지켜야 할 존엄성의 균형을 맞추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건강한 경계선 만들기' 3단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내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극단적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차분하고 현실적인 방법들을 제안해드릴게요.

1단계: 내 업무 경계선을 스스로 명확하게 정의하기

경계선을 지키려면 먼저 내 경계가 어디인지를 내가 알아야 해요. 막연하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거든요.

오늘 밤 이것만 정리해보세요:

내가 해야 하는 일의 범위:

  • 계약서나 직무 기술서에 명시된 업무
  • 팀 전체가 공유하는 공식적인 역할
  • 업무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합리적인 협업

내가 거절해도 되는 것들:

  • 업무 시간 외 사적인 연락에 즉각 응답하는 것
  • 상사의 개인적인 심부름이나 사적인 부탁
  • 내 업무 범위를 명확히 벗어난 추가 업무를 아무런 보상 없이 떠안는 것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세요: "이건 내가 돈을 받고 하는 일인가, 아니면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위해 떠안는 일인가?"

이 경계가 확실해지는 순간, 어디서부터 선을 그어야 할지가 훨씬 명확해집니다.

2단계: 정중하지만 단호한 '건조한 거절' 기술 익히기

거절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거절하는 말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연습이 필요합니다.

상황별 거절 언어 예시:

퇴근 후 사적인 심부름을 요청받았을 때:

  • "죄송한데요, 퇴근 후에는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요. 업무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요."

내 업무 범위를 벗어난 추가 업무를 요청받았을 때:

  • "제가 맡은 업무들이 있어서 추가로 진행하면 기존 업무 품질에 영향이 생길 것 같아요.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면 좋을까요?"

주말에 불필요한 연락이 왔을 때:

  • 즉각 응답하지 않고, 월요일 업무 시간에 확인 후 답하기

핵심은 감정적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고 차분하게 내 상황을 설명하는 거예요. 화를 내거나 따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실을 설명하듯 말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선을 긋는다는 것이 화를 내거나 싸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건조한 태도'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3단계: 혼자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기

가장 중요한 단계예요. 한 사람이 경계선을 그으면 "저 사람은 예민하다"로 끝날 수 있어요. 하지만 다수가 같은 목소리를 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직장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

  • 비슷한 상황을 겪는 동료들과 조용히 공감대 형성하기
  • "저도 그런 상황이 불편했어요"라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용기가 됨
  • 부당한 관행이 있다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문제 제기하기

갑의 횡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을들의 연대'입니다. 한 명이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면 "너만 유별나다"며 잘라내려 하겠지만, 다수가 같은 선을 긋기 시작하면 갑 역시 그 썩어빠진 논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한 명의 '예외'는 쉽게 무시됩니다. 그러나 여러 명의 '기준'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말 안 들으면 자르면 되지, 너 말고도 할 놈 많아"라는 논리가 통하지 않으려면, 그 논리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각자의 작은 경계선 지키기에서 시작됩니다.

Q&A 현실적인 질문

Q1. "경계선을 그으면 결국 찍혀서 불이익을 받지 않나요? 현실적으로 생계가 달린 문제인데요."

가장 현실적이고 무거운 질문이에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 단기적으로는 불이익이 생길 수 있어요. 이것을 부정하면 거짓말이 되죠.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봐야 해요경계선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를 지켜주는가? 착취가 당연시되는 환경에서 버티다 보면 결국 번아웃이 오고, 건강이 무너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불이익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해요.

단기적인 불이익을 최소화하면서 경계선을 지키는 방법은, 감정적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일관되게 내 입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핵심 업무(본업)에서는 누구보다 확실한 성과를 내어 '대체 불가능한 실력'을 키우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만 점진적으로 선을 그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해요.

Q2. "상사가 교묘하게 업무를 가장해서 사적인 일을 시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런 교묘한 굴레 씌우기에는 '기록' '공론화'로 맞서야 합니다. 지시를 받았을 때 구두로만 알겠다고 하지 마시고, 사내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해 "지시하신 A 업무를 진행하려면, 현재 진행 중인 B 프로젝트 일정이 지연될 것 같은데 어떻게 우선순위를 조정할까요?"라고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세요.

개인적인 일을 공식적인 업무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기록으로 남기면, 지시를 내린 사람도 압박감을 느끼고 스스로 요구를 철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확실한 선이 건강한 관계를 만듭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 관계에 확실한 선은 있어야 합니다. 그 선은 갑을 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대우하는 최소한의 경계를 지키기 위한 거예요.

이 사회에서는 굴레를 거는 사람이 있고, 굴레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현실을 모르는 척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어요.

굴레를 쓰더라도, 고개까지 숙일 필요는 없습니다. 값을 받았다면 값만큼만, 그 이상은 내 존엄을 담보로 맡기지 않아도 됩니다.

받는 만큼만 일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에요. 그것은 계약을 지키는 것이고,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다음 사람이 같은 굴레를 쓰지 않도록 하는 연대의 행위입니다.

오늘 하루, 혹시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참아온 것이 있다면 잠시 생각해보세요"이게 내가 받는 대가에 포함된 일인가?" 그 질문 하나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해줄 거예요.

변화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오늘 내 경계선 하나를 지키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그 작은 선 하나가 언젠가 "이런 썩어빠진 생각 자체를 못 하게 만드는" 진짜 변화를 향한 시작이 될지 모릅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귀한 사람이에요.여러분 모두가 부당한 굴레 없이, 자신다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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