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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느끼다,생각하다

노가리가 명태 새끼였다니!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순우리말 동물 이름들

by JapaniLog 2016.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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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바삭한 노가리를 안주로 먹고 있을 때였어요. 문득 한 친구가 "노가리가 원래 명태 새끼라는 걸 아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놀랍게도 자리에 있던 절반 이상이 그 사실을 몰랐어요. 그저 맥주 안주 이름인 줄만 알았다는 반응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이 작은 에피소드를 겪으며 문득 깨달았어요. 우리말에는 동물들의 새끼를 부르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고유 이름들이 정말 많은데, 현대인들은 대부분 그냥 "새끼 OO"라고 부르거나 아예 모르고 지나치고 있다는 것을요.

요즘 사회에서는 유난히 모든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부르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하지만 자연과 깊이 교감하며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달랐습니다. 생명 하나하나의 성장 과정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각기 다른 고유한 이름을 붙여주었거든요.


바다에서 건져 올린 우리말의 보물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특성상, 물고기 새끼 이름들이 특히 발달했어요. 어업이 생계와 직결되었기에, 물고기의 성장 상태에 따라 잡는 시기와 조리법이 달랐거든요.

어른 물고기 새끼 이름 특징과 의미
명태 노가리 지금도 맥주 안주로 사랑받는 국민 간식
고등어 고도리 화투의 '고도리와 같은 발음으로 친숙함
갈치 풀치 풀잎처럼 가늘고 길다는 의미의 시적인 이름
가오리 간자미 넓적한 몸통이 귀엽게 느껴지는 이름
조기 꽝다리 작지만 감칠맛 나는 우리 밥상의 단골
방어 마래미 겨울철 횟감의 제왕인 방어의 앙증맞은 어린 시절
농어 껄떼기 발음 자체가 씩씩하고 활기찬 느낌
잉어 발강이 연못에서 팔딱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해지는 이름
전어 전어사리 가을이면 온 동네를 향긋하게 만드는 전어의 새끼
청어 굴뚝청어 굴뚝과 청어의 독특한 만남이 만든 이름
열목어 팽팽이 이름만 들어도 작고 통통한 모습이 그려짐
붕어 쌀붕어 쌀알만큼 작다는 의미가 담긴 그림 같은 이름

숭어의 새끼만 해도 동어, 모치, 모쟁이처럼 여러 이름이 있어요. 같은 물고기 새끼를 부르는 이름이 지역마다 달랐다는 것 자체가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얼마나 세밀하게 관찰했는지를 보여주죠.


산과 들을 누비던 야생 동물들의 숨겨진 이름

육지 동물들의 새끼 이름은 더욱 정겨워요. 오랫동안 사람과 함께 살아온 동물들이 많다 보니, 이름에도 애정이 듬뿍 담겨있거든요.

  • 개호주 - 새끼 호랑이. 산군이라 불리던 무서운 호랑이도 어릴 때는 이렇게 귀여운 이름으로 불렸어요
  • 능소니 - 새끼 곰. 묵직한 곰의 이미지와 달리 몽글몽글하고 귀여운 느낌이 나죠
  • 꺼병이 - 새끼 꿩. 발음부터 너무 귀엽고, 여기서 '꺼벙하다는 말도 나왔어요
  • 초고리 - 새끼 매. 날카롭고 용맹한 매의 어린 시절을 뜻해요
  • 금승말 - 그 해에 난 말. '금년에서 온 듯한 표현으로 새 생명의 신선함이 담겨있어요
  • 동부레기 - 뿔이 날 만한 정도의 송아지. 단순히 '새끼 소가 아니라 성장 단계를 이름 안에 담아낸 것이 놀라워요
  • 송치 - 난 지 얼마 안 된 소의 새끼, 또는 암소 뱃속에 있는 새끼. 태어나기 전의 존재에게도 이름을 붙여준 따뜻함이 느껴져요
  • 애돝 - 일 년 된 새끼 돼지
  • 햇돝 - 그 해에 난 돼지
  • 태성 - 이마가 흰 망아지

강아지와 병아리사람과 가장 가까이 살아온 동물들의 새끼 이름은 특히 세밀해요.

  • 발탕강아지 - 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한 강아지. 단순히 어린 강아지가 아니라, 걸음마를 막 시작한 그 순간을 포착해서 이름으로 만든 감각이 놀라워요
  • 쌀강아지 - 털이 짧고 부드러운 강아지. 쌀처럼 보들보들한 털의 질감을 이름으로 표현한 것이죠
  • 솔발이 - 한 배에서 난 세 마리의 강아지. 숫자 정보까지 이름 안에 담긴 독특한 단어예요
  • 솜병아리 - 알에서 갓 깬 병아리. 솜뭉치처럼 보송보송한 모습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작은 생명들까지 놓치지 않은 관찰력 - 곤충과 작은 생명들의 세계도 우리 선조들의 세밀한 시선을 볼 수 있어요.

  • 굼벵이 - 매미의 애벌레. 지금도 "굼벵이처럼 느리다"고 쓰이는 이 단어가 원래는 매미 애벌레를 뜻한다는 걸 알면 더 생생하게 느껴져요
  • 물송치, 학배기 - 잠자리의 애벌레. 같은 존재를 부르는 이름이 두 개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워요
  • 며루 - 각다귀의 애벌레. 땅속에서 살며 벼 뿌리를 잘라먹는 해충으로, 농사짓던 선조들에게는 골칫거리였겠지만 이름은 나름 독특해요
  • 서캐 - 이의 알. 지금도 "서캐도 안 보인다"는 표현으로 일상에 남아있어요

'무녀리가 현대인에게 주는 조용한 위로

여러 단어 중에서도 제 마음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한 단어는 무녀리예요. 한 배에서 태어난 여러 마리의 새끼 중 맨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녀석을 뜻합니다.

흥미로운 건, 짐승의 경우 맨 처음 태어난 새끼가 다른 새끼들에 비해 유독 몸집이 작고 허약한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좀 모자라거나 행동이 굼뜬 사람을 비유할 때 "무녀리 같다"는 표현을 쓰곤 했어요.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요? 무녀리는 비록 작고 약하게 태어났을지 몰라도, 어미의 좁은 산도를 가장 먼저 뚫고 나와 동생들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가장 용감한 생명이에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고, 스스로가 한없이 작고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이라 서툴고 약한 것은 당연한 이치예요. 중요한 것은 그 약함을 딛고 결국 자신만의 단단한 두 다리로 일어서는 과정 그 자체에 있습니다.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이 아름다운 순우리말 이름들을 쭉 살펴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우리 선조들은 단순히 "OO의 새끼"라고 뭉뚱그리지 않았어요. 각각의 생명을 고유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 존재에 맞는 이름을 따로 지어주었던 거예요.

  • 발탕강아지처럼 성장의 순간을 포착하기도 하고
  • 솜병아리처럼 감각적인 특징을 담기도 하고
  • 동부레기처럼 생물학적 단계를 이름에 녹여내기도 했죠

이런 섬세함이 바로 우리말의 진짜 매력이에요. 단순한 어휘의 나열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경이롭게 바라보던 우리 선조들의 다정한 시선이자,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려 했던 지혜의 산물이거든요.

현대 사회에서는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이런 섬세한 언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하지만 가끔은 효율성이라는 차가운 안경을 벗고, 우리 주변의 생명들을 조금 더 다정하고 섬세한 언어로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저녁 노가리 안주에 맥주 한잔을 기울이게 된다면, 슬쩍 아는 체를 해보세요. “이게 명태의 어린 시절 이름이래라고 말하며 나누는 작은 대화가, 팍팍한 일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줄지도 모르니까요.

덕이 있는 자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처럼, 이런 아름다운 우리말을 기억하고 나누는 사람들 곁에는 분명 마음이 통하는 이웃들이 모일 거예요. 여러분의 일상에도 이 순우리말들처럼 다정하고 섬세한 순간들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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