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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느끼다,생각하다

부정과 불공정 그리고 부정함

by JapaniLog 2026.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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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한 가지 분명한 신념을 품고 삽니다. "옳은 건 옳고, 틀린 건 틀리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참 깔끔하고 논리적인 전제죠.

문제는 조직생활을 좀 해보면 이 믿음이 현실과 꽤 자주 어긋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틀렸다고 해서 꼭 실패하는 것도 아니고, 바르게 행동했다고 해서 반드시 보상받는 것도 아니거든요. "저건 분명히 선 넘었는데?" 싶은 일도 구렁이 담 넘듯 지나가고, "저래도 되나?" 싶은 사람이 떵떵거리며 잘 지냅니다.

세상이 내 가치관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공정함을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속이 더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그냥 넘기자니 양심이 불편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바로잡으려 들면 거대한 벽에 부딪히기 일쑤니까요.

이 답답함 속에서 우리는 흔히 두 가지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하나는 괴롭기 싫어서 불공정을 슬그머니 눈감아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 사람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내 피 같은 에너지를 갈아 넣는 겁니다. 솔직히 둘 다 그렇게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내 기준을 버리는 것도, 나를 갉아먹는 것도 결국엔 깊은 상처로 남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겐 세 번째 선택지가 필요합니다. 공정함이라는 내 기준은 끝까지 꽉 쥐고 있되, 저 불공정한 사람을 뜯어고치는 걸 내 과제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모순 같지만, 내 신념을 지키는 것과 그걸 남에게 억지로 들이밀어 관철시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니까요.

예전에 모시던 임원 한 분이 직장 내 불공정함에 열을 올리던 저에게 툭 던지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 그냥 분류만 하고 끝내."

그땐 그 말이 참 차갑게만 들렸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만한 처세술이 없더군요. 우리는 꼴 보기 싫은 사람을 마주하면 "대체 왜 저러지? 왜 저렇게까지 뻔뻔하지?"라며 자꾸만 이유를 찾으려 듭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감정 소모의 늪으로 빠지는 출발점이거든요.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계속 그 사람의 행동을 곱씹어야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계속 생각해야 하니 생각할수록 내 감정이 거기에 꽁꽁 묶여버리니까요.

그럴 땐 그냥 '분류'의 딱지를 붙이고 생각의 회로를 과감히 끊어버리세요.

- 저 사람은 남을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구나
- 인정 욕구가 비정상적으로 강하네  
- 자기 방식만 정답이라고 믿는 부류구나

이렇게 규정하고 마침표를 찍는 겁니다. 이유를 파고들거나 뜯어고치려 하지 않고 "그냥 저런 인간이군" 하고 털어버리면, 신기하게도 내 감정의 에너지가 확 세이브됩니다. 의도를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세상에 대해 냉소적으로 살라는 게 아니라, 내 소중한 멘탈을 어디에 쓸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의미니까요.

냉정하게 손익을 따져볼까요? 얌체 같은 사람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릴 때, 진짜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정작 그 사람은 발 뻗고 잘 자는데, 억울해서 잠 못 이루고 일상에 지치는 건 나 자신입니다. 그 분노에 대한 청구서는 상대방이 아니라 늘 내 감정의 계좌로 날아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감정을 낭비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강력한 방어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공정은 비단 회사 안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이 뭉친 곳이라면 어디든 똬리를 틀고 있죠. 가질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커질수록 눈뜨고 코 베이는 상황도 잦아집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입을 꾹 다물면 세상은 1밀리미터도 바뀌지 않겠죠. 세상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불공정 앞에서 기꺼이 분노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분노가 나를 잿더미로 태워버리는 방식이어선 안되겠죠. 순간 확 끓어올랐다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진짜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기준을 단단히 지키는 사람, 그래서 지치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공정함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불공정한 이들에게 내 감정을 저당 잡히지 않는 것. 모순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품고 가는 것이야말로 거친 세상을 길게, 그리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일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이 세상의 불공정에 맞서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부당한 힘은 늘 침묵을 먹고 자랍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됩니다. 그 침묵을 깬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멈추지 않고 조금씩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겠죠.

두려움이 없어서 나선 것이 아닐 겁니다. 두려움을 안고도 한 걸음 내디딘 것이겠죠. 저처럼 그 두려움 앞에 머뭇거린 사람에게, 그 용기는 결코 작게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옳습니다. 그리고 그 옳음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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