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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느끼다,생각하다

장례식장에서 달려온 의사 -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기 전에 멈춰야 하는 이유

by JapaniLog 201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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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었던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저는 이걸 읽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단순한 감동 스토리가 아니라우리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실수를 너무나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거든요.

요즘 사회에서는 유난히 타인을 빠르게 판단하고 쉽게 분노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지하철에서, 병원에서, 직장에서.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상대방을 단정 짓고, 그 판단에 따라 날선 말들을 쏟아내죠. 하지만 과연 우리가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일까요?

오늘은 한 의사와 아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성급한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정을 헤아리는 마음이 왜 필요한지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 의사의 아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긴급 호출을 받고 병원에 도착한 의사. 수술실에는 큰 사고를 당한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고, 수술실 앞에는 분노로 가득 찬 아버지가 서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우리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정말 무책임하네요!"

아이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어요. 자식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데, 담당 의사가 늦게 나타났으니까요. 그 공포와 분노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 의사는 어제 자신의 아들을 잃었습니다. 교통사고였어요. 하루아침에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밤이 얼마나 길고 처절했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워요. 그리고 오늘은 그 아들의 장례식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영정 앞에 앉아 있는데 호출기가 울렸어요. 긴급 수술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는 연락. 그 순간 의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자신의 아들을 묻는 날, 다른 집 아들을 살리러 달려간 것입니다.

눈물도 채 닦지 못한 채, 장례식장을 뒤로하고 수술복을 입었어요. 그리고 수술실 앞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진정하세요" - 미소 뒤에 숨겨진 처절한 노력

"죄송합니다. 제가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어요. 하지만 최대한 빨리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진정하세요. 지금 바로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장례식장에서 달려온 몸으로도, 눈앞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 미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시나요? 어제 아들을 잃은 사람이, 오늘 다른 아이를 살리러 달려와서, 욕을 먹으면서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는 자신의 사정을 해명하지 않았어요. 변명하지 않았고, 맞받아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 이 아이를 살리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이것이 진짜 프로페셔널의 모습이자, 동시에 가장 깊은 슬픔을 품은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그 침착함을 오히려 거만함으로 받아들였어요.

"진정하라고요? 당신 아들이라면 진정하겠어요? 직접 이 상황을 겪지 않고서야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요. "당신 아들이라면"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 정작 그 의사는 이미 자신의 아들을 잃은 상태였으니까요.


성공한 수술 후 달려 나간 이유

몇 시간에 걸친 대수술이 끝났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어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습니다. 큰 위기는 넘겼네요."

의사는 이 말만 남기고 시계를 보며 달려 나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간호사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말과 함께요.

아이의 아버지는 또 화가 났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요? 너무 거만하네요! 우리 아들이 어떤 상태인지, 몇 분만 더 설명해 줄 시간도 없는 건가요?"

그런데 그 의사가 달려간 곳이 어딘지 이제 여러분도 아시겠지요. 바로 아들의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땅에 묻어야 하는 그 시간을 이미 한참 넘겨버린 채, 다른 집 아이의 목숨을 살리고 나서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었던 거예요. 그가 달려 나간 건 거만해서가 아니었어요. 그건 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을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간호사의 눈물이 밝힌 충격적 진실

"선생님의 아들이 어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오늘 장례식에 있다가 긴급 호출을 받고 오신 거예요. 이제 환자분의 아들은 목숨을 건졌으니... 선생님은 선생님 아들을 묻어주러 가야 돼요."

간호사의 이 말을 들은 소년의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만, 그 순간의 무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죠.

아마도 그 아버지는 그날 이후 오랫동안 이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거예요내가 그렇게 소리쳤던 그 사람이, 자신의 아들 장례식을 뒤로하고 내 아들을 살려준 사람이었구나.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위험한 실수

이 이야기가 단순한 감동 스토리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우리 모두가 그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유난히 타인을 빠르게 판단하고 쉽게 비난하게 된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늦게 출근하는 동료 새벽까지 아픈 아이를 간병한 밤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직원 오늘 아침 가족과 크게 다툰 마음
길을 막고 느리게 걷는 노인 무릎이 너무 아파 이것도 힘겨운 하루
갑자기 연락이 끊긴 친구 혼자 감당하기 힘든 어떤 사정
차갑게 말하는 상사 위에서 받는 압박과 책임의 무게

우리는 항상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해요. 하지만 사람의 행동 뒤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맥락과 사정이 숨어 있습니다.

인간이 타인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0.1라고 해요. 그리고 그 첫인상은 이후의 모든 판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죠. 늦게 나타난 의사. 그것만으로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순식간에 내려졌어요. 그 판단 뒤에 숨겨진 맥락은 단 한 조각도 고려되지 않은 채로요.


현대 사회가 유난히 각박해진 이유는 뭘까요?

요즘 사회에서는 즉각적인 판단이 미덕처럼 소비됩니다.

  • 기사 제목 몇 줄만 보고 사람을 욕하고
  • SNS 글 몇 줄 보고 인격을 단정하고
  • 눈앞 장면 하나만 보고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단정짓죠

이런 성급함이 우리를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의 사정을 다 알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자꾸 '내 자리'에서만 재단하려고 하니까요.

  • "늦게 온 의사 = 무책임한 사람"
  • "안 받아주는 상담원 = 불친절한 사람"
  • "무표정한 직원 = 성의 없는 사람"

이렇게 결정해 버리면 그 순간은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결국 세상이 온통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투성이로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지치는 건 나 자신이에요.


'한 박자 늦은 판단'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런 상황을 만나면 일부러 마음속에 브레이크를 한 번 밟아보려고 해요.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건 상대를 변명해주려는 게 아니라나 자신을 덜 소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에 가까워요.

  •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혹시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한 번 생각해보기
  • 화가 나기 전에 "이 사람이 왜 이럴까?"를 먼저 질문하기
  • 내 기준에서 상대를 평가하기 전에 "내가 그 입장이라면?" 잠깐 상상해보기
  •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 "나는 이 사람의 하루 전체를 알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기

물론 무조건 참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부당한 대우에는 정당하게 항의해야 하죠. 하지만 감정의 칼을 뽑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보는 여유를 가지자는 거예요.

그 한 번의 여유가

  • 나를 덜 후회하게 만들고
  • 상대를 덜 상처 입히고
  • 관계를 덜 망가뜨립니다

조용히 자기 몫을 다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부분은 의사의 '미소'예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 표정. 그건 억지로 만들어낸 직업적 친절함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것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가 내 슬픔보다 중요하다"는 가장 조용하고 강한 형태의 헌신이었어요.

요즘 사람들은 유난히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해졌어요. SNS에 올려 공감을 받고, 희생을 알아봐 주길 기대하는 문화 속에서, 이 의사는 단 한마디도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 않았어요.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가장 힘든 날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칭찬도 위로도 받지 못한 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돌을 던지곤 합니다. 그들의 표면만 보고, 그들의 깊이는 보지 못한 채로요.


돌을 들기 전에 잠깐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저는 오늘 하루 조금 다르게 살고 싶어졌어요.

누군가가 나를 짜증나게 할 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그 사람을 향해 돌을 들기 전에 딱 한 번만 생각해보려고요.

"이 사람의 오늘 아침은 어땠을까?"

어쩌면 그 사람도 장례식장에서 달려온 의사처럼, 아무도 모르는 무게를 혼자 짊어진 채 내 앞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요.

판단은 쉽고, 이해는 어렵습니다. 비난은 빠르고, 공감은 느립니다. 하지만 그 어렵고 느린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세상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거 아닐까요?

"모든 사람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러니 항상 친절하라."

오늘 하루,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세요. 그 사람의 하루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우리는 결코 다 알 수 없으니까요.

여러분의 오늘 하루에도 누군가의 따뜻한 이해가 닿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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