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 주변의 일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런 건가, 아니면 환경이 저렇게 만든 건가?”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격과 기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성격과 기질에 대한 관심도가 늘어난 탓에 저도 저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대화 주제들도 비슷했습니다.
MBTI 열풍이 전 국민적 현상이 된 것도, 어쩌면 나의 본모습을 이해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는 현대인들의 간절한 마음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우리가 흔히 헷갈리는 '타고난 기질’과 ‘사회적 능력’의 차이를 통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도 험난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기질과 성격, 정확히 뭐가 다른 걸까요?
많은 분들이 기질과 성격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시는데, 사실 이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질(Temperament)은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같습니다. 부모님 두 분의 유전자가 섞여 나에게 전달된, 태어날 때부터 장착된 기본 옵션이죠. 쉽게 흥분하는지, 낯선 상황에서 위축되는지, 감정 기복이 큰지 작은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성격(Personality)은 그 기질이라는 하드웨어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에 가깝습니다. 기질을 바탕으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겉모습이죠.
| 구분 | 기질 (하드웨어) | 성격 (소프트웨어) |
| 형성 시기 | 태어날 때부터 | 유년기~청소년기를 거치며 |
| 결정 요인 | 유전, 부모로부터 물려받음 | 기질 + 환경 + 경험 |
| 변화 가능성 | 성인 이후 거의 불변 | 어느 정도 조정 가능 |
| 특징 |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반응 | 상황에 맞게 의도적으로 표현 |
그래서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되는 거예요. 부모의 기질을 반반씩 물려받되, 어떤 조합으로 발현되느냐에 따라 아빠를 닮은 아이가 나오기도 하고 엄마를 닮은 아이가 나오기도 하거든요.
"대학 가더니 성격이 완전 바뀌었어"의 진짜 정체
여기서 많은 분들이 이런 반문을 하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은 군대 갔다 오더니 완전히 달라졌는데요? 취업하고 나서 사람이 바뀐 것 같아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건 기질이 바뀐 게 아니라 사회적 능력이 레벨업된 것입니다.
이걸 RPG 게임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캐릭터의 기본 직업과 스탯은 처음 생성할 때 결정됩니다. 하지만 던전을 돌고 몬스터를 잡으면서 레벨이 오르면, 같은 캐릭터라도 훨씬 강력하고 다양한 행동이 가능해지죠.
사람도 똑같습니다.
- 원래는 내성적인데,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회의에서 말도 잘하고 협상도 하는 사람
- 원래는 소심한데, 군대나 조직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자기 주장도 하고 필요하면 맞설 줄도 아는 사람
이 사람들의 기본 기질은 그대로지만, 사회적 능력이 크게 레벨업된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슬라임을 잡든 풀을 뜯든, 던전에 들어간 이상 레벨업은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각자 자기 던전에 들어와 있어요. 회사라는 던전, 인간관계라는 던전, 프로젝트나 육아라는 던전에서 어쨌든 경험치를 쌓아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절대강자 아줌마"도 사실은 만렙을 찍은 생존자입니다
마트나 지하철에서 가끔 마주치는 장면이 있죠. 주변 시선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할 일을 거침없이 하는, 이른바 “절대강자 아줌마” 스타일의 분들 말이에요.
처음 보면 "저 분은 원래 저런 성격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그 분이 원래 내성적인 기질을 타고났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이런 것들을 깨달으신 거죠.
- “이 정도 행동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다”는 기준을 스스로 정립했고
- “잠깐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도 5분 뒤면 나를 기억도 못 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으며
- “내가 당당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손해”라는 현실적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는 조금 민망하더라도, 사회적 능력이 최고 레벨에 도달한 상태인 거예요. 기질은 그대로인데, 그 기질을 다루는 능력이 성숙해진 상태인 거죠.
부모님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 기질 가지고 애를 탓하지 마세요
이 대목에서 아이를 키우고 계신 부모님들께 조심스럽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의 기질은 사실 부모가 물려준 것입니다. 유전적으로 전달된 특성이죠. 그런데 많은 부모님들이 자신이 물려준 그 기질을 가지고 아이를 야단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해요.
- 조용하고 신중한 아이에게 “너는 왜 이렇게 느려?”, “활발하게 좀 굴어 봐!”
-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에게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울어!”
이건 사실 부모가 자기에게서 물려준 걸 다시 아이에게 탓하고 있는 꼴이기도 해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말이 딱 맞는 장면이죠.
부모가 해야 할 일은 기질을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기질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다듬어 주는 것입니다.
조용한 아이는 억지로 리더를 시키기보다, 혼자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주고 천천히 자기 속도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식으로요.
유년기에 기질을 가지고 계속 야단맞고 뭐라 들은 아이는 더 움츠러들게 됩니다. 그 기질을 이해하고 잘 다듬어 줄 수 있는 건 역시 부모니까, 애들 막 뭐라 하지 말고 잘 달래가며 성장시켜 보세요.
이미 던전에 진출한 사회인들에게: 망설이지 마세요
이미 사회라는 던전에 들어와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질은 이미 확립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향적이라면 외향적으로 타고날 수는 없고, 감수성이 예민하다면 무딘 사람이 될 수는 없어요. 이건 받아들여야 하는 출발선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능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충분히 키울 수 있습니다. 출발선은 달라도 레벨업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요.
사회적 능력을 키우는 실질적인 방법들
- 작은 불편함에 자신을 조금씩 노출하기: 발표가 두렵다면 소규모 모임에서 먼저 말하는 연습부터
- "이 정도는 괜찮다"는 기준 만들기: 경험을 통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의 범위를 파악하기
- 기본 매너를 갖추되 과도한 눈치는 버리기: 타인을 배려하는 예의는 지키되, 그 이상의 두려움은 성장에 방해
- 자신의 기질을 적군이 아닌 아군으로 만들기: 내성적인 기질은 깊이 있는 사고력, 예민한 기질은 세밀한 관찰력으로 발휘
모든 사람이 “절대 강자 아줌마” 급까지 가는 건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레벨업은 가능해요.
타인의 시선, 생각보다 빨리 잊힙니다
우리가 사회적 능력 레벨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바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을 말씀드리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관심받고 싶어하는 연예인이나 SNS의 관종들을 봐보세요. 이슈가 되어도 한순간이에요. 그렇게 발버둥을 쳐도 대부분은 한순간 반짝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잖아요.
“일순 사람들이 당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도,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당신의 존재조차 잊을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당신 행동에 망설임을 가질 필요 없어요. 기본 매너만 가지면 어떤 행동이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조금 어색해도 괜찮고,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처음에는 서툴러도 괜찮아요. 그걸 견디면서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나의 사회적 능력’이 되어 있을 거예요.
기질은 출발선, 사회적 능력은 속도
오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질은 내가 선택한 출발선이 아니지만, 사회적 능력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속도다.”
아이를 키우고 계신 부모님이라면, 아이의 기질을 탓하기보다 그 기질이 꽃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이미 사회라는 던전에 진출해 있는 우리라면, 타고난 기질을 원망하기보다 그 기질을 무기로 삼아 사회적 능력을 한 단계씩 레벨업해 나가면 됩니다.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싶다면 먼저 보수 이상의 일을 해야 해요. 그리하여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야 하거든요.
기질은 바꿀 수 없지만, 사회적 능력은 죽는 날까지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슬라임을 잡든 풀을 뜯든, 오늘 하루도 던전 안에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으로 충분해요.
'읽다,느끼다,생각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무인자동차와 트롤리 딜레마 — 기계에게 생명의 가치를 맡길 수 있을까? (0) | 2018.07.04 |
|---|---|
| IQ가 높으면 정말 일을 잘할까? — 숫자에 가려진 진짜 실력의 정체 (0) | 2018.07.04 |
| 루게릭병과 ‘KEEP MOVING’, 진짜 챌린지는 지금부터입니다 (0) | 2018.06.21 |
| 지식은 넘쳐나는데 왜 지혜로운 사람은 드물까: 지성을 연마하는 진짜 방법 (0) | 2017.07.07 |
|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 썰물 같은 지금을 버티는 당신에게 (0) | 2017.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