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밥 한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서 불러냅니다.
그러나 날 위해 날마다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 걱정은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너무도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서울여자대학교 사랑의엽서 공모전에서 대상작> -엄마의 위암판정 소식을 듣고...-
길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에게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자연스럽게 말하면서도, 정작 집에 돌아와서는 나를 위해 밤늦게까지 기다리며 따뜻한 밥을 차려주신 어머니께 무뚝뚝하게 "밥 먹었어요"라고만 대답한 적 말이에요.
오늘은 서울여자대학교 사랑의 엽서 공모전 대상작, 어머니의 위암 판정 소식을 듣고 쓴 그 절절한 고백을 통해 우리 모두의 마음속 깊이 묻어둔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그 글을 읽으면서 저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거든요. "아, 나도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자꾸만 올라왔어요.
왜 우리는 가장 많이 받은 사람에게 가장 인색해질까요?
그 공모전 수상작의 대비 구조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모순되어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에게는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전부를 준 어머니를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밥 한 번 사준 친구에게는 답례하고 싶어서 불러내면서도, 날마다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는 감사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친밀성의 역설’이라고 해요. 가까울수록 오히려 감사함을 표현하지 않게 된다는 거죠. 부모님의 사랑이 너무 크고 조건 없이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숨이 막혀봐야 아는 것처럼요.
현대 사회의 구조도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켜요. SNS에서는 24시간 타인의 완벽한 순간들이 쏟아지고, 성과 중심의 직장 문화에서는 늘 "밖의 세상"에 정신이 팔려 있죠. 과잉 연결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정작 가장 중요한 연결인 가족과는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어요.
외로움은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더 깊게 자라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모순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시달리며 감정 노동을 하다가, 집에서만큼은 가면을 벗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 가면을 벗는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부모님 가슴에 너무나도 날카로운 대못을 박고 맙니다.
"이제야 알게 되어 죄송합니다"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그 공모전 수상작을 쓴 분은 어머니의 위암 판정 소식을 듣고 나서야 이 모든 걸 깨달았다고 했어요. "이제야 알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직도 너무도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그 절절한 고백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요.
우리는 대부분 잃어버릴 위기가 찾아와야 비로소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요.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읽고 마음이 찡하다면, 이미 늦지 않은 겁니다. 깨달음 자체가 바로 변화의 시작이니까요.
감정의 구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부모님께 상처를 주는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이 사람은 내가 어떤 흉한 모습을 보여도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응석에 가까워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적인 조언이 있어요. 단순히 죄책감에 빠져 눈물 흘리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후회는 과거를 향해 있지만, 사랑은 현재를 향해 있어야 해요.
지금 깨달았다는 건,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과거를 되돌리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의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뿐이죠.
오늘부터 시작하는 ‘부모님께 마음 전하기’ 3단계
그렇다면 머릿속에 맴도는 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어떻게 현실의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거창한 이벤트나 값비싼 선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해봐요.
1단계: 당연한 일상에 진심 어린 감사 표현하기
친구의 밥 한 끼에는 열 번 고맙다고 하면서, 평생을 차려주신 어머니의 밥상에는 침묵했던 우리입니다. 오늘부터는 가장 사소한 것부터 감사를 표현해보세요.
언어 습관을 조금만 바꿔보세요:
- “밥 먹었어요” → “오늘 찌개 정말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 “들어왔어요” → “늦게까지 안 주무시고 기다려주셔서 고마워요”
- 무뚝뚝한 침묵 → “엄마(아빠),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부모님께 전화나 문자로:
- “엄마, 오늘 김장하신다고 했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 “아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이 짧은 한마디가 부모님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최고의 명약이 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이 되거든요.
2단계: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사과하기
밖에서는 입에 달고 사는 "미안해"라는 말을 가족에게는 왜 그렇게 아끼게 될까요? 자존심 때문이 아니에요. 나중에 잘해드리면 된다는 안일함 때문이에요.
만약 오늘 부모님께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면, 방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거실로 나와 짧게라도 말씀드리세요.
- “아까 피곤해서 말이 좀 짜증스럽게 나갔어요. 미안해요”
- “생각해보니까, 그동안 참 말도 안 되는 투정 많이 부렸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말로 하기 어렵다면 편지를 써보세요. 길지 않아도 돼요. 딱 세 문장이면 충분해요:
- 첫 문장: 구체적인 감사한 순간 하나
- 두 번째 문장: 솔직한 미안함
- 세 번째 문장: 지금의 마음
이 작은 용기가 가슴에 박힐 뻔한 대못을 부드럽게 뽑아냅니다.
3단계: ‘효도 이벤트’ 말고 ‘효도 루틴’ 만들기
가끔 크게 한 번 잘해드리는 것도 좋지만, 정말 부모님을 단단하게 지탱해드리는 건 작고 반복되는 일상이에요.
주기적인 연결고리 만들기:
- 주 1회 전화 루틴: "매주 일요일 저녁 9시는 엄마·아빠와 통화하는 시간"으로 캘린더에 아예 적어두기
- 한 달에 한 번, 부모님날: 꼭 같이 밥 한 끼 먹거나, 멀리 산다면 택배라도 하나 보내기
- 사진 한 장, 메시지 한 줄: 길 가다 예쁜 하늘이 보이면 “오늘 하늘 예뻐요. 엄마 생각났어요”
부모님의 '오늘’을 물어보기:
우리는 늘 내 힘든 일상만 토로할 뿐, 부모님의 하루가 어땠는지는 묻지 않아요. 부모님도 누군가의 위로와 관심이 필요한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효도는 거창한 선물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신호를 꾸준히 보내는 것에 더 가까워요.
Q&A 현실적인 질문
Q1.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요. 상처를 받기도 했고요. 그래도 감사해야 하나요?”
이 고민을 가진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계실 것 같아요. 부모님이라고 해서 모두 완벽하지 않고, 부모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경우도 분명히 있죠. 그 상처는 진짜이고, 그 아픔은 무시되어서는 안 돼요.
하지만 한 가지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완벽한 부모님이 아니었더라도, 그분들도 그분들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셨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감사와 용서는 강요할 수 없어요. 하지만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린다면, 그 작은 틈에서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이 싹트기도 한답니다.
Q2. “갑자기 다정하게 대하려니 너무 어색하고 쑥스럽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진심을 전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거든요. 오랫동안 그런 표현 없이 살아왔다면 더욱 그렇고요.
그럴 때는 말이 아닌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보세요. 퇴근길에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간식을 조용히 식탁 위에 올려두거나, 짧은 안부 문자를 보내는 것부터요. 어색함은 한순간이지만, 따뜻함은 오래 남습니다.
관계의 온도는 섭씨 1도씩 올라가는 거지, 한 번에 100도로 끓어오르진 않더라고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 감기에 걸리셨는데도 가족을 위해 김장을 하시는 어머니가 계신다면, 오늘 저녁 꼭 이 말 한마디를 건네주세요.
“엄마, 고생하셨어요. 감사해요.”
그리고 오늘 하루, 부모님 가슴에 박혀있는 대못을 하나씩 뽑아드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거창하지 않아도 돼요.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 따뜻한 눈빛 하나, 그것으로 충분해요.
부모님의 사랑은 우리가 감사를 표현하든 하지 않든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알아보고 감사를 전할 때, 비로소 그 사랑은 완성됩니다.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을 주고도 가장 적게 돌려받은 사람들. 오늘 하루만큼은 스마트폰 화면이나 낯선 타인이 아닌,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신 부모님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오늘 이 글을 쓰고 나서,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드리려고 합니다. 특별한 말 없이도 괜찮아요. 그냥 목소리 한번 들으면 될 것 같아요.
여러분 모두의 마음이 부모님께로 조금 더 가까이 닿기를, 날씨는 차갑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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