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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느끼다,생각하다

서툴러도 괜찮다 - 완벽해야만 한다는 굴레에서 나와 아이를 구해내는 법

by JapaniLog 2016.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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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메일 하나를 보낼 때도 몇 번을 다시 읽어보고, 아이가 숙제에서 틀린 문제를 보면 나도 모르게 "왜 이것도 못 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그 순간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실수에 관대하지 못하고 실수를 두려워하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정신의학자 토마스 사즈의 한 문장에서 시작해서,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잊혀진 소중한 권리 하나를 되찾아주는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고 해요.

왜 우리는 서툴러도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을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 무거운 짐이 있어요. 일을 잘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무조건 잘해야만 하는 임무가 떨어지는 것 말이에요. 실수 한 번 하면 "프로답지 못하다"는 시선이 따라오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준비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죠.

그리고 이 압박은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해집니다.

완벽주의는 더 나아지려는 건강한 향상심이 아니에요. 그것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할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의 발현입니다.

현대 사회는 성과 중심 문화입니다. 과정보다 결과만을 평가하는 환경에서 서툰 시작은 무능함의 증거로 여겨져요

그리고 SNS를 통해 타인의 완성된 결과물만 보이는 세상에서, 나의 서툰 과정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현상이 생기죠.

결국 완벽을 강요받으며 자란 어른들이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아이들에게 많은 강요를 하고 있어요. 무조건 성적이 좋아야 하고, 처음부터 잘해야만 한다는 굴레를 씌워 아이들의 무궁한 가능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있죠. 그 결과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틀릴까봐 손을 들지 않는 아이, 실수할까봐 새로운 일을 맡지 않으려는 직장인, 잘 못할 것 같아서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어른들.

서툴 권리가 진짜 어른을 만든다

정신의학자 토마스 사즈는 성장의 본질에 대해 아주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합니다.

"일을 똑바로 잘할 수 있는 권리뿐만 아니라, 일을 좀 서투르게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이 문장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아요. 진정한 성숙은 무결점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뜻이거든요.

서툼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구분 완벽주의에 갇힌 사람 서툴 권리를 인정하는 사람
실수 대처 자신의 가치가 훼손되었다고 느끼며 깊은 자책에 빠짐 성장을 위한 자연스러운 데이터 수집 과정으로 여김
새로운 도전 실패할까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함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호기심을 가지고 시도함
타인(아이)을 보는 눈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고 통제하려 함 서투른 과정을 지켜봐 주며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림
삶의 만족도 늘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의 번아웃 유연하고 여유로우며 심리적 안전감을 느낌

서툴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완벽하지 않은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용기 있는 선언입니다.

아이들에게 "일을 좀 서투르게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하다 보면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며,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이것이 정답만을 강요하는 세상으로부터 아이를 지켜내는, 진짜 어른들의 따뜻한 배려입니다.

완벽의 강박을 깨는 현실적인 연습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상에서 이 '서툴 권리'를 허용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죠.

나 자신에게 먼저 '서툼의 면죄부' 발급하기

아이와 타인에게 관대해지려면,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해요. 내가 내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면, 타인의 실수 앞에서도 날이 설 수밖에 없거든요.

실수에 대한 첫 반응을 바꿔봐요.  "왜 나는 맨날 이 모양일까?" 대신 "이번엔 어디서 막혔지? 다음엔 어떻게 해볼까?"라고 나에게 말해주기

목표를 70점으로 설정하기. 새로운 일을 처음 할 때는 100점이 아닌 70점만 목표로 해도 충분하다고 인정하기

실수를 했을 때 자책하는 시간을 5분으로 제한하고, 그다음은 개선 방안 생각하기

완벽주의는 나를 보호하는 갑옷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에요. 70점짜리 시작이 100점짜리 망설임보다 훨씬 강합니다.

피드백의 언어를 '정답'에서 '과정'으로 바꾸기

아이들이나 후배가 실수를 했을 때,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첫마디가 그들의 성장을 결정해버려요.

"왜 이것도 못 해?" 대신에 "처음이니까 당연히 어렵지. 같이 해볼까?"

"빨리 해!" 대신에 "천천히 해도 돼. 네 속도로 하면 돼."

"틀렸잖아" 대신에 ", 이번엔 이렇게 됐구나. 다음엔 어떻게 해볼까?"

"왜 이렇게 성적이 낮아?" 대신에 "이번에 어떤 부분이 어려웠어?"

아이한테는 결과가 아닌 시도 자체를 칭찬하기. "잘했어"보다 "해봤다는 게 대단해"가 훨씬 강력해요

Q&A 현실적인 질문

Q1. 아이에게 실수를 허용하면, 매사에 대충하고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요?

많은 부모님들이 우려하시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심리학적 연구 결과는 정반대를 가리킵니다. 실수를 허용받고 심리적 안전감을 느낀 아이들이 오히려 더 큰 책임감을 가져요.

핵심은 "실수해도 괜찮다""대충 해도 괜찮다"를 구분하는 거예요. 실수 허용은 시도와 도전을 격려하는 태도이고, 대충 허용은 아예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걸 방치하는 태도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요"실수는 괜찮아. 대신, 그다음에 한 번만 더 해보는 게 중요해." 실수를 통해 배우는 아이는 결코 나태해지지 않아요. 오히려 현실을 견디는 힘과 회복력을 배우게 됩니다.

Q2. 직장에서는 작은 실수도 치명적일 수 있는데, 어떻게 서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나요?

직장에서의 '서툴 권리'란 치명적인 업무 실수를 정당화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하는 거예요.

완벽해 보이려고 모르는 것을 숨기다가 더 큰 사고를 치는 것보다, "제가 이 부분은 아직 서툽니다.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신뢰받는 전문가로 성장해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성숙한 어른의 증거니까요.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우리의 삶

이 세상에 100%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정해진 입력값에 완벽한 결과값만 출력해야 한다면, 우리 삶에 '성장'이라는 눈부신 단어는 존재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아이들은 넘어지면서 걷는 법을 배우고, 서투른 옹알이를 거쳐 유창한 말을 하게 됩니다. 어른이 된 우리 역시 마찬가지예요. 수많은 서투름과 실수가 모여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어 주었어요.

오늘 하루, 완벽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계신가요?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시나요? 괜찮습니다. 우리는 지금 정답을 맞히는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에 맞춰 나만의 인생을 그려가는 중이니까요.

오늘, 딱 한 가지만 해보세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나 자신과 아이에게 이렇게 속삭여주는 것. "조금 서툴러도 괜찮아. 넌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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