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다,느끼다,생각하다

동방예의지국의 불편한 진실 — 호칭 하나에 담긴 차별의 구조

by JapaniLog 2018. 7. 11.
반응형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정말 예의 바른 나라에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윗사람에게만 깍듯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걸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예의범절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예의가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웠다며 유교에 근거한 예의범절을 무척이나 따지는 나라입니다. 예의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 예의라는 것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하 주종관계에 너무 익숙한 건지 아랫사람에 대해서는 예의가 너무 없습니다. 매너가 없어요.

오늘은 결혼과 함께 마주하게 되는 호칭들 속에 숨겨진 차별 구조와, 그것이 우리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결혼과 함께 드러나는 호칭의 이중 잣대

두 집안이 이어지는 결혼의 경우, 결혼 당사자들은 살아오면서 잘 접하지 못하던 호칭들에 눈을 뜨게 됩니다. 뭐 거의 반 강제적으로 말이죠.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 아주버님, 처남, 처제

한가지 여기서도 좀 애매한 게 시댁, 처가부터 시작해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게 보이지 않나요?

구분 시댁 쪽 호칭 처가 쪽 호칭 차이점
집안 지칭 시댁 (기본적으로 높임) 처가 (평어, 처갓댁으로 보정) 기본 호칭 자체의 격 차이
미혼 남동생 도련님 처남 자 유무의 결정적 차이
미혼 여동생 아가씨 처제 격식과 친근함의 온도 차이
기혼 남동생 서방님 처남 존칭 표현의 유무
/오빠 아주버님 (상황에 따라 다름) 체계적 존칭의 유무

시댁은 높이고 처가는 낮추는 듯한 느낌이 분명히 있습니다. 처갓댁이라는 표현이 생겨난 것 자체가 이런 불균형에 대한 자연스러운 보정이었던 셈이죠.

원래 장인, 장모도 장인어른이나 장모님이라 부르지 않는 게 정석이라고도 했거든요. 왜냐 장인, 장모의 '자는 어른을 뜻하니 특히 장인한테 장인어른이라 하는 것은 어른을 두 번 붙이는 거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문법적 중복"이 생겨난 이유 자체가, 처가 쪽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자 하나가 만드는 심리적 권력 구조

사회생활 해보면 알겠지만 같은 사장이라도 '~사장님 '~사장자 하나만으로도 어감이 바뀝니다.

자가 안 붙음으로 편하게 생각하고 막 대하게 되는 걸 느낀 사람 있을까요? 분명 같은 사장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사장님이 ~라 하시던데라 깍듯이 호칭하는 사람이 있고 ‘~사장이 ~라던데라고 하며 대충 호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틀리냐고요? 아니에요. 비슷한 지위, 비슷한 일을 합니다. 하지만자를 붙이고 안 붙이고 차이일 뿐인데 직접 만날 때도 존대는 하지만, 평소에 사장님이라 하는 쪽이 더 신경 쓰이고 잘 하게 됩니다.

언어가 태도를 만들고, 태도가 관계를 만듭니다. 호칭은 단순한 이름 부르기가 아니라, 상대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신호입니다.”

도련님이나 서방님, 아가씨에 비해 처남, 처제역시 좀 다르지 않나요? 이게 바로 시댁, 처가부터 차별이 시작되는 것 같거든요.


예의는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하 주종관계에 너무 익숙한 건지 아랫사람에 대해서는 예의가 너무 없습니다. 윗사람에게는 과도하게 깍듯하면서 아랫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이중적 태도가 일상화되어 있어요.

일상에서 목격되는 예의의 불균형들을 보면요.

  • 직장에서 상사에게는, 알겠습니다!” 하면서 후배에게는 반말과 무시
  •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여기요, 이거 왜 이래요?” 같은 함부로 하는 말투
  •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반말을 당연시하는 문화

예의는 서로 간에 차리는 게 아닐까요. 유교의 원래 정신도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인자하게,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공경을 표하는 쌍방향 관계였는데, 현실에서는 일방향으로만 작동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논쟁과 호칭 문제: 극단은 싫지만 이 부분은 인정

솔직히 말해서 저도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정말 싫어합니다. 성도 아버지 어머니 각각 하나씩 받아 두 개로 쓰고, 남녀평등이 아닌 여성우위를 만들려는 여성우월주의자라서 말이에요.

외국이나 일본처럼 남편 성 따라 본인들 성을 바꾸는 건 괜찮은 건가요? 그리고 성을 그런 식으로 딸 때는 어머니 성이 앞인가 아버지 성이 앞인가요? 그리고 자식들한테는 성을 어떻게 물려줄 건가요? 나중엔 이름은 두 자인데 성은 열 몇 자인 아이도 나오겠습니다.

흥분해서 말이 새어 버렸네요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흔하니

어쨌든 그 싫어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에 위의 호칭 문제도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저도 인정하는 바이고 바꿀 방법을 찾아야 된다고 봅니다.

극단적인 해결책들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적어도 호칭에서 드러나는 차별적 구조는 분명히 문제가 있거든요. 이건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라 기본적인 평등과 상호 존중의 문제입니다.


배려가 있으면 호칭은 부차적 문제

서로가 배려한다면 위에 제가 이야기한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호칭 따위 누가 신경 쓴다고요.

이 말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결국 예의는 '위아래가 아니라서로 간에차리는 것입니다.

호칭 개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호칭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호칭을 통해 드러나는 상대방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자는 것이죠. 작은 변화들이라도 의미 있는 이유는 그 언어 속에 당신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기기 때문입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에 걸맞은 나라가 되려면, 윗사람에게만 깍듯하고 아랫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반쪽짜리 예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사회 운동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정중하게 대하는 아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진정한 예의는 방향이 없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그 사람을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예의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