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예상 못 한 곳에서 빵 터지는 광고를 만날 때가 있어요.
이번에 본 일본 수도협회(日本水道協会)의 포스터가 딱 그랬습니다.
공익 광고라고 하면 보통 딱딱하고 진지한 이미지잖아요.
그런데 이 포스터는 짝사랑 소녀의 두근거림을 앞세워 수돗물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 전개가 어찌나 파격적인지 보다가 그만 웃어버렸습니다.
포스터의 상황은 이래요.
나무 그늘에 숨어서, 짝사랑하는 야구부 남학생이 수도꼭지의 물을 마시는 모습을 훔쳐보는 여학생.
그리고 그 남학생이 자리를 뜨자, 같은 수도꼭지의 물을 마시며 혼자 기뻐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죠.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기쁨에 들뜬 소녀의 마지막 컷 대사가… 정말 강렬합니다.
조금 전까지 미즈노군♡이 마시던 수돗물을 마셔버렸어! 맛있다!! 하지만 이 물이 당연하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일본의 높은 수도 기술 덕분에, 수돗물이 적절하게 유지·관리되는 덕분에 미즈노군♡과 내가 안전하고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는 거잖아! 수도 유지에 막대한 돈이 든다지만 노후화되어 가는 시설을 정기적으로 보수해야 하고, 만약의 경우에도 단수가 되지 않도록 지진 대비도 해야 하니까! 나랑 미즈노군♡은 수돗물로 이어져 있어~!!
두근거리던 소녀가 갑자기 수도 인프라 유지·보수와 내진 대책을 줄줄 읊는 이 전개, 수다맨이 따로 없죠.
짝사랑의 설렘으로 시작해서 어느새 공익 메시지로 착지하는 이 능청스러움이 이 포스터의 진짜 매력이에요.
압권은 소녀의 빨개진 얼굴이에요.
짝사랑 상대를 떠올려서 상기된 건지, 아니면 저 장황한 설명을 숨도 안 쉬고 쏟아내느라 얼굴이 달아오른 건지… 계속 보다 보면 은근히 헷갈립니다.
마지막 「水道でつながってる(수도로 이어져 있어)」 한 줄 때문에 붉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일본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보면 이 대사, 소재로도 꽤 재미있어요.
특히 「〜なきゃいけない」, 「〜ないといけない」처럼 "~해야만 한다"는 의무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거든요.
소녀의 다급한 말투 속에 문법이 잔뜩 숨어 있어서, 이런 광고 문구 하나로도 표현을 익힐 수 있죠.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줄, 「私と水野くん♡は水道でつながってる!!(나랑 미즈노군♡은 수도로 이어져 있어!!)」는 진지한 인프라 이야기를 로맨스로 마무리하는 절묘한 한 방이에요.
전 이 포스터를 보면서 황당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꽤 재미있었습니다.
공익 광고를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싶어 감탄도 했고요.
딱딱해지기 쉬운 메시지를 이렇게 사람들 기억에 남게 만드는 걸 보면, 확실히 일본 수도협회 예사롭지 않네요.
여러분은 이 포스터, 어떻게 보셨나요?
'Re: 제로에서 시작하는 일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본어로 말하는 인생 명언·관용 표현 — 「決して諦めるな」부터 「風の便り」까지 (0) | 2015.12.05 |
|---|---|
| 일본어 직업 이름 정리 — 회사원부터 전문직까지 (요미가나 포함) (0) | 2015.12.05 |
| 일본어 첫인사와 명함 교환 표현 — 「初めまして」부터 「名刺」까지 (0) | 2015.12.05 |
| 일본어로 추천·제안하기 — おすすめ・提案の表現 정리 (1) | 2015.12.04 |
| 공항 체크인 영어·일본어 회화 — 여권 제시부터 좌석 선택까지 (0) | 2015.12.04 |